Lee jae yun

석존 釋尊
2018-06-04 ~ 2018-06-10


[이재윤의 조각적 수행과 깨달음]

2,500년도 넘는 불교의 역사를 통해 불상은 오랜 역사와 무수히 많은 지역에서 다소의 양식적 차이는 있으나, 정형화가 이루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만법 진리를 깨닫고 사바세계의 중생을 구제, 교화하는 석존을 위시하여 다양한 보살 등의 상들이 오늘날까지 면면히 내려오며 뭇 세인들에까지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던 원천은 무엇일까. 모르긴 해도 수 천 년 그렇게 오래도록 생명력을 가진 힘은 역시 경험적으로 무언가 확신을 주는 요소가 전제되지 않고는 말하기 어렵다. 다분히 설화적인 포장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수용자의 신심 외에 그 조형의 주역인 유명, 무명의 작가들이 쏟아온 수행적 내공과 혼의 결과가 아닐까.

조각가 이재윤에게 불상을 창작하는 목적을 스스로 자문하는 일이 자주 있었을 것이다. 작가가 갈고 닦은 기량과 내공이라면 일반 미술계에서도 손색이 없다. 작가는 오랜 세월을 통해 정형화된 불상조각을 두루 섭렵했을 뿐만 아니라, 佛家만이 아니라 속세에도 커다란 깨달음과 법을 설파한, 그야말로 祖師로 부를만한 스님들의 실물 모델링에도 발군의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세속의 미술에 뜻을 두지 않고, 불교조각만을 고집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여러 가지 동기가 있겠지만, 자신의 내면에 뜨거운 불심과 열정이 아니라면 공감하기 쉽지 않다. 작가에게 조각하는 행위는 물질적 질료를 통해 궁극의 이상적 존재자를 발견하는 것이요, 현현하는 것이다.

이는 형식과 질료, 정신과 물질, 주체와 객체의 조화가 정점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생애를 건 수행이라 보아야 할 일이다. 작가의 작품이 수행이 아닌 것이라면, 요사이 세간에 인기를 끄는 3D 모델링 기계에 의해 정교하고 정밀하게 복제해내는 것과 차이가 없을 것이다. 작업이 수행의 과정이라면 頓悟든, 혹은 漸修든 필경 작가로서의 깨달음이 수반될 것이다, 조각가 이재윤의 작업이 수행이라면 과연 어떤 깨달음이 있는 것일까. 작가가 ‘생활불교’를 강조하면서 법당 밖에서의 미적 체험과 수행을 결합하고 있다는 점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석존의 형상과 뭇 인간의 모습을 오버랩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작가는 원형상과도 같은 기존의 정형화된 불상을 변형시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대자대비의 근원이지만 형식 속에서 접하는 석존은 어딘지 모르게 엄숙하고 경건하기만 할 뿐, 인간이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바로 그런 존엄의 대상을 인간의 모습으로 환원시켜 친근하게 경험시키고 있다는 점은 적어도 조형적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가부좌를 틀기 전 가볍게 양반다리를 한 부처님은 미소를 머금었다. 부처님은 바위 위에서 다리를 살짝 풀어 기대며 편안하게 앉아계셨다.이제 막 흙에서 모습을 드러내던 반가사유를 하고 계시는 석존은, 고개를 슬쩍 갸우뚱했다. 무엇을 생각하고 계실까. 절로 궁금해진다.” (불교신문 인용)

고대 그리스 시대, 예술과 종교가 불가분의 관계인 때가 있었다. 아니 예술이 곧 종교였고, 종교가 곧 예술이었던 때라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오늘날까지도 서구 정신과 문화의 뿌리로 받드는 고대 그리스 문화의 핵심이다. 하지만 아이러닉하게도 유독 바로 이 대목만이 구미의 많은 지역에서 간과되거나 외면되고 있다. 성상을 둘러싼 오랜 대립을 겪은 이후, 서구의 종교문화는 묘한 양상을 보여 왔다. 성상을 배척하는 곳에서 미술은 위축되고 상대적으로 음악이 발전하며, 반대로 성상을 애호하는 지역에서는 미술이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각적 현상에서만 본다면, 불교는 역시 예술 종교, 특히 미술과 밀접한 종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상징과 알레고리도 그렇지만, 모든 법과 진리를 시각적인 조형 현상으로 수렴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불교미술의 백미는 역시 불상으로, 미술이 종교와 일체가 된 것 자체가 경이롭다. 간다라와 마투라 미술 이래 정형화와 발전을 거듭해 온 불상은 우리 전통 조각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표성을 띠고 있다. 불교조각을 우리는 종교적 측면을 떠나 찬란한 전통을 이어온 우리만의 문화예술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열린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점에서 조각가 이재윤의 현대화 수행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단언한다.

이재언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