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hn Jinah

Inscape scape
2017-10-27 ~ 2017-12-09

의자라는 구상적 오브제로 작품을 선보였던 손진아 작가의 이번 전시는 오브제에서 탈피하여 식물, 자연대상이 가진 본래의 인상과 본질, 현상 등을 점, 선, 면 그리고 색이라는 회화의 기본적인 방식과 다양한 패턴과 흐름을 통해 추상적 형상으로 담아낸 새로운 방식의 다양한 신작을 선보입니다.



INSCAPE SCAPE

손진아의 이번 전시는 '인스케이프(Inscape), 스케이프(Scape)'라는 제목으로, 그동안 '의자'라는 특정 오브제와 다양한 패턴을 병치, 그리고 혼합시켰던 양상과는 차이를 두고 있다. 어쩌면, 작가는 수십 년 동안 사용했던 의자를 떠나 새로운 회화적 모색기에 접어드는 출발점에서, 사물의 본질(inscape)로 다시 돌아와 사물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포용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수년 동안 작가가 그림 속에 포함했던 의자는 화가 자신의 자화상이자 사회적 초상으로 다양한 역할을 보여주는 상징성을 띠었지만, 의자라는 특정 오브제를 벗어나는 대신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속에서 식물이 가진 다양한 패턴과 흐름, 추이를 가져온다. 그는 식물이라는 자연 대상을 향해 일종의 관찰, 침묵, 몰입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대화를 하는 것처럼 사물이 가진 본래의 인상과 풍경, 개성과 본질들을 담아내기 위한 여정을 거친다. 그리고, 이러한 본질성은 때때로 작가의 의지와 욕망을 통해 이미지와 패턴의 왜곡 과정을 거쳐 인간의 마음이 가진 풍경, 인간의 욕망이 가진 풍경, 그리고 우리의 눈과 마음이 뒤섞이면서 가진 풍경으로 돌아온다.
손진아의 이번 작업은 구상적 오브제에서 탈피하여 점, 선, 면, 그리고 컬러라는 가장 기본적인 작업 방식으로 돌아왔지만 그의 작업은 사물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성격과 우리의 눈과 마음을 통해 변화되며 차이를 불러일으키는 외부적 힘을 한 작품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한 때 게하르트 리히터의 부인으로, 최근 뉴욕 현대미술관 회고전으로 더욱 유명해진 이자 켄즈켄(Isa Genzken (German, b. 1948)이 1989년부터 1991년까지 3년 동안 집요하게 제작한 <근원적인 리서치(Basic Research)> 회화 작업을 연상시킨다. 이 작업들은 켄즈켄의 설치 등에 비해 덜 알려진 편이지만, 회화작업은 마이크로(micro)하고-매크로한(macro), 미시적이고 거시적인 변조를 읽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손진아의 작품은, 식물의 표면을 다양한 패턴과 색의 흐름으로 읽게 하여 외면적 인상, 점-선-면 등이 만들어 내는 형상과 현상의 관계성을 모색하게 만든다. 이것은 다시금 사물의 본질로 작가가 눈을 돌리고 그동안 심리적으로 조절하고 컨트롤했던 회화 자체의 표면을 조금 더 풀어주고 느슨하게 하며, 점, 선, 면 그 자체가 스스로의 힘으로 캔버스라는 화면을 향해 뻗어 나가게 한다. 여기서 점은 선과 만나고 선은 면을 이루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녹여내는 것이다. 그것은 회화를 다시 한번 인간의 욕망과 알레고리적인 해석에서 해방시켜 회화적 표면에 주목하는 것이다.

결국 작가가 작업을 한다는 것은 작가 스스로의 경험에서 오는 자신과의 대화를 그림 속에 펼쳐 보이는 것이다. 그는 원형 캔버스 여러 패널과 대형 작업들을 한 편의 시리즈와 회화적 설치, 혹은 '베이직 리서치 페인팅'처럼 구축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점과 선, 면과 컬러로 채워나가면서 스스로의 독백을 한 편의 회화적 시처럼 정적이고 동적인 패턴으로 구축해나간다. 그것은 화면을 구성하고 구축하는 이중적 방식을 통해 손진아의 작업은 한국의 단색화 화가들이나,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색면화가들 등 추상회화가 가졌던 '환원성(reduction)'에 머물지 않고 작가노트에 기록된 대로 이번 작업은 "내면의 풍경, 본질, 개성"을 상징하는 "인스케이프"와 "현상, 형상, 인상"과 연관된 "스케이프"로 구성된다. 특히, 손진아는 추상화의 자기환원성, 자기결정성에 갇히지 않도록 회화 작업을 전시 공간과 함께 호흡하도록 설치한다.
손진아의 작업은 눈에 띄는 '컬러'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그는 컬러로 선을 만들고 면을 만들어 폴카 닷(polka dot)을 만들어낸다. 컬러는 아웃라인과 여백을 만들고 포지티브하고 네거티브한 공간을 대비시킨다. 회화의 역사에서 컬러는 인간의 본능과 직관, 감각과 연관되어 색채는 그것을 보는 우리에게 심리적 주체성을 환기시킨다. 색채 자체의 본질로 돌아온 손진아의 이번 작업은 식물에서 출발했지만, 색채의 물결과 파도를 연상시킨다. 색과 색이 서로 동적으로 만나서 서로 엉키고 중첩되며 흰 면의 고요함과 마주한다. 때로는 두 개의 패널이 서로 대화를 나누듯, 거울 이미지를 형성하기도 한다. 꼼꼼하게 채워진 점과 면들은 지극히 회화적이며, 섬세한 마티에르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매트한 표면은 유연하면서도 강인하다. 손진아는 일체의 사물에서 느낄 수 있는 인상과 본질, 현상 등을 추상적 형상으로 그려내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그림의 표면과 작가가 하나가 되고, 사물과 그것을 대하는 인간의 마음이 하나가 되며, 물질과 정신이 하나로 만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집중성을 보여준다. 손진아의 추상화는 외물(外物)과 자아가 서로 교감하는 인스케이프와 스케이프의 장이 되는 회화적 장(pictorial field)으로, 서로 상이한 형상과 색채들을 흡수하고 수용하는 회화적 풍경화이다. 이것은 서로 상이한 것들을 포용하고 수용하며 과거에 비해 여유로우면서도 한층 다이내믹해진 회화적 공간이다.


정연심(홍익대 예술학과 교수, 기획/비평)
서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