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 , 홍지연
TWO & ONE
2012-06-02 ~ 2012-06-30

TWO & ONE展
김은주․홍지연


갤러리 미고에서는 조덕현, 오병욱의 TWO & ONE展에 이어 올해에는 김은주와 홍지연을 초대하였다. TWO & ONE展은 두 작가의 작품을 상호 비교함으로써 새로운 관계항을 만들어보자는데 그 기획의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번전시에 참여하는 두 작가는 공교롭게도 모두 ‘꽃’이라는 소재를 다루지만 이들의 화풍은 외형적으로 보자면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홍지연의 화면은 민화나 팝아트의 발랄함이 느껴지는 화려함을 담고 있지만 김은주는 완전히 탈색된 그림자와 같은 회화이기 때문이다.

김은주의 꽃 그리고 바니타스(Vanitas)

김은주는 2000년대 중반부터 줄곧 꽃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보여주는 꽃은 화려하거나 아름다운 전통적인 미감을 담고 있진 않다. 종이에 두텁게 연필로 그려진 작가의 그림은 행위만 고스란히 남아있을 뿐 꽃의 색채와 생명력은 탈색된다. 꽃이라기보다는 그 그림자처럼 보이는 작가의 형상은 수없이 반복된 연필선의 중첩으로 힘겹게 그 형상의 경계들이 드러날 뿐 이다. 그렇게 작가는 가만히 꽃을 그린다.

꽃은 정물화 중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다. 꽃은 화려하지만 우리 곁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그 아쉬움 때문인지 모르지만 오래전부터 항상 삶의 상징이 되어왔다. 불교의 연꽃, 기독교의 백합, 사군자의 매화, 국가나 도시를 상징하는 꽃 등 그 짧은 시간에 피고 지는 미묘한 성질을 애써 우리들의 삶에 담아보고자 했다. 이러한 버릇은 이미 오래전에 형성된 것이다. 특히 정물화라는 장르가 유행했던 17세기 네델란드에는 바니타스 정물화가 유행하게 되는데 당시 사람들은 꽃의 화려함 속에서 삶의 유한함을 사유했다. 농업과 어업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했던 네델란드 사람들은 그 풍요 속에서도 삶의 무상함과 부질없음을 한 폭의 정물화를 통해 배워 왔다. 마찬가지로 치열한 노동으로 피어오르는 작가의 검은 꽃들은 마치 바니타스의 정물화처럼 “Memento Mori"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의 드로잉은 어쩌면 세속의 삶에 젖은 우리들에게 ‘형’과 ‘색’ 이면의 세계를 사유하게 만든다. 작가는 익숙한 매체인 ‘연필’이라는 재료와 가장 흔한 ‘꽃’이라는 친근한 주제로 전통적인 정물화의 의미를 전복시키고 있다.

홍지연의 팝 그리고 바이러스

작가 홍지연은 자신을 “서양미술사에 침투한 바이러스”라고 규정한 바 있다. 전통적인 이미지들을 다양하게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망을 형성시키는 작가의 작업스타일은 분명 바이러스를 닮았다. 전통적인 이미지와 팝적인 기법을 한 화면에 용해시켜내는 작가의 작업은 미술평론가 김준기의 표현대로 ‘이분법적인 구분들을 혼재와 혼융의 양상 속에서 재편하는 작업’이다. 현대적인 팝아트와 전통의 이미지라는 대척점에 가까운 상반된 개념들이 혼재하는 작가의 화면은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그래서 무엇이든 가능해져 버린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

홍지연은 책가화, 맹호도, 삼매도, 공작도 등 민화의 이미지를 화려한 색과 형을 더욱 강조하여 제시한다. 김은주가 철저하게 억제해온 조형요소들을 홍지연은 더욱 부각시킨다. 사실 ‘전통’이라는 개념은 한국현대미술사에있어 그 덩어리가 만만치 않은 주제다. 어쩌면 한국현대미술은 당연히 수용의 역사였고 이를 한국적 의미로 번안하려는 노력은 멈춘 적이 없다. 앵포르멜이나 단색회화를 주도했던 작가들은 말할 나위가 없고 미디어아트나 최근의 작품에서도 이러한 흔적은 여전히 무겁게 남아있다. 하지만 홍지연의 작품에서는 전통의 문제가 강박적인 형태로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유쾌하게 비튼다. 이 지점이 홍지연의 작품이 가지는 커다란 미덕이다. 작가는 유연한 상상력과 위트로 전통과 현재를 유영한다. 어디든 옮아가는 바이러스처럼...

김은주와 홍지연

두 작가는 다양한 측면에서 비교가 가능하다. 작업의 스타일이나 작가적인 태도, 그리고 작품의 의미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관계항들이 만들어진다. 가령 김은주는 검은색의 미묘한 뉘앙스를 선호하고 유행과 변화보다는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구축하려는 내면적인 경향이 강한 반면 홍지연은 강렬한 색의 대비를 통해 화려한 화면을 구축하고 현대미술의 다양한 담론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작가라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하지만 검은색의 밀도를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김은주의 치열함과 빈틈없는 구성과 완성도 높은 화면을 보여주는 홍지연의 근성은 서로 무척이나 닮았다. 두 작가의 예술에 대한 여정이 어디로 향할지는 알 수 없지만 김은주와 홍지연을 한 공간에서 만나는 일은 분명 흥미로운 사건이다.

- 이영준(큐레이터,김해문화의전당전시교육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