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i YunZu

이윤주 개인전 - 그대를 보았지
2013-02-23 ~ 2013-03-11

그대를 보았지

언제나 나는 무언가를 경험한다는 것에 의미를 찾고 싶었다. 이러한 의문은 조금 더 존재론적인 호기심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는 분명 같은 시간에 있지만 모두 다르게 보고 느낀다. 그리고 그 다름에서 제각각 스스로를 지각할 것이다. 내 그림들은 나를 비추지만 동시에 대상을 나타내기도 하고, 또한 나와 대상의 사이를 담고 있기도 하다. 나는 나로써 나답게 존재하고 있지만 대상이 없다면 나도 없어질 것이다. 나를 둘러싼 외부의 영역이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나도 미세한 점처럼 움츠러들 것이며, 언젠가는 뿅-하고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에 내 눈앞에 새겨지는 모든 것들,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은 나를 구성하는 나, 그 자체인 것이다.
옛날 사진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누구에게나 특별한 기억과 그리움의 감정들, 수년 전에 방문했던 어느 철거 지역을 찍은 사진으로 다시 떠올리게 된 과거의 내 모습과 생각들, 그리고 최근 부산을 돌아다니며 얻어낸 풍경을 그리는 현재의 작업까지, 이 번잡한 과정 속에서 내가 얻고자 했던 것은 언제나 나와 그 사이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드러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내가 느끼는 것들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분명하게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말로 설명하기 시작한다면, 나는 늘 마음 속에서 길을 잃고 나의 말들이 소리 없이 날아가버려 언제나 ‘말하기’에 좌절하고 만다. 결국 단 한번이라도 나는 제대로 된 말을 해보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떠오를 뿐이다. 그러나 ‘그리기’는 나에게 명료한 방향을 제시한다. 어느 쪽으로 가야 길을 잃지 않는지 언제나 말해주고 있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축적된 삶으로부터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시간을 담담히 만들어 나간다. 그 어느 것도 옳지 않은 것이 없고, 또한 부정되는 일이 없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나의 하루,하루를 빛나게 만들어줄 것이다.
시간 앞에 놓여진 삶은 떠돌이 여행자의 노래이며, 봄날의 가벼운 산책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경계를 알 수 없는 어느 지점에서 웃거나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모두의 머리 위로 색종이가 뿌려진다. 아마도 삶의 유의미함은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어느 섬광처럼, 그대를 보았지. 아주 오래된 사진에 누군지도 모르는 타인의 젊은 눈빛, 청춘의 빛나는 표정, 몸짓, 분위기. 그리고 시간을 뛰어넘어, 모두 허물어지고 부서진 동네에서 숨죽였던 두려움, 대상을 잃은 죄책감, 쓸모 없이 남겨진 쓰레기의 냄새들, 상실의 냄새. 다시 현재로 돌아서, 지금 여기에 일상, 익숙한 당신, 어린 기억, 진짜 인생에 대한 낯선 의문들....